안녕하세요, 삼동면 대지포마을에 살고 있는 귀촌 3년 차 위금실이라고 합니다. 남해에 6주살러 왔다가 현재 남해 사람과 결혼해서 평생 살고 있답니다. ?
저의 고향은 경북 상주에요. 고등학교 졸업까지 상주에 살다가 대학을 수도권으로 가게 되면서 쭉 서울에서 살았었죠. 전공은 만화일러스트레이션인데 그림은 졸업 후 거의 안 그렸고, 첫 회사를 동화책으로 어린이 공연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야기꾼의 책공연)에 다녔거든요. 거기서 홍보물 디자인, 배우•악사 대역, 교육, 기획, 행사 진행 등 4년 동안 여러 역을 수행했어요.
어렸을 때, 관심 있는 일은 조금씩 다 해봤던 거 같아요. 워낙 다양한 일을 했다 보니 ‘주로’ 한 일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면 음, 대답하기 좀 어렵네요. ?
Q.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일을 하셨는데, 남해로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2021년도에 남해군에서 진행한 <남해군 촌라이프 실험 프로젝트:6주살러,남해>를 통해서 남해를 처음 와봤어요.
서울에서는 다양한 일을 많이 했는데, 분산된 경험을 가지다 보니 이게 경력이 되어 있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이 잘 안 구해졌어요. 어디에 이력서를 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방황하던 시기에 SNS 광고를 통해 프로그램을 봤고, ‘돈도 안 벌고 있는데 내가 6주살러에 참여해도 될까?’ 하고 많이 고민했어요.
주변에서 남해를 갔다 온 친구들이 ‘남해 좋다’, ‘가서 기분 전환하고 와라’ 말해줘서 과감히 결정했고 6주 동안 살게 되었어요. 마침, 그때 제 인생에서 고민이 참 많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살다 보니 마음도 안정되고 좋았어요.
그렇게 살아본 남해가 좋아 이렇게 계속 살고 있고요. 그리고, 남해에서 우연히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되어 결혼도 하게 되었네요. ?
Q. 현재 남해에서 어떤 일을 주로 하고 계신가요?
남해에서는 ‘윈드씨(WINDSEE)’라는 디자인하는 사업자를 운영하고 있어요. 윈드씨는 <2023 남해 청년으로 살아가기(지역 정착)>라는 지원 사업을 통해서 만들게 됐어요.
남해에 와서 제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결국 디자인 프로그램(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을 다룰 줄 알아서 이쪽을 선택하게 됐어요. 그렇다고 디자이너가 직업은 아니고, 지금껏 살아왔던 것처럼 이 일, 저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살고 있는 대지포 마을에 ‘금해민박’이라는 숙소를 오픈했고요.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는 경쟁이 치열하고 제가 재미있게 했던 활동들이 인정을 못 받아 고민도 많았지만, 남해는 참 귀촌한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 생각이 드네요.
Q. 금해민박 오픈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지금의 고민은 또 어떤 게 있으실지 궁금해요.
‘금해민박’은 대지포 마을에서 꽤 오랫동안 운영되던 민박집이었어요. 저와 남편이 <촌라이프 실험 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한달살러, 남해>를 운영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남해를 제2의 고향처럼 느끼길 바랐던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1년 반 정도 금해민박을 빌려 숙소로 쓰게 됐는데, 올해는 사업이 없어져서 저희가 더 이상 도시 청년들을 남해로 불러오기에 힘든 상황이 되었어요. 금해민박도 당연히 사용할 수 없게 되고요.
그래서 마을의 유일한 청년인 저와 남편이 이 민박을 대신 운영해서 남해와 마을을 계속 알리고, 살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도 청년이 살아가고 있고, 당신들도 와서 살아볼 수 있다고.
꿈에 부풀어서 사장님께 ‘대신 운영해보겠습니다’ 했는데 완전히 거절 당했어요. 돌이켜보면 제 생각과 말이 오만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사장님은 제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시잖아요. 마을에 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제가 이 마을 사람과 결혼은 했지만 계속 살 거라는 믿음도 없으셨을 테니까. 결국 옆에서 지켜보시던 시아버지께서 도움을 주셔서, 금해민박을 임대하여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어요.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초반에는 민박집을 제 취향대로 바꾸는 일이 마냥 재밌었는데, 정화조 교체부터 인테리어를 하면서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좀 우울하고 무섭더라고요.
저는 브랜딩이나 컨설팅 업체를 찾지 않고 로고 디자인부터 인테리어까지 혼자 했는데, 이야기를 만들려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아직 예약이 몇 건 없어요. 작년보다 가격도 올라서 여름마다 이용하던 분들도 안 오시고. '너무 꿈이 컸나? 괜히 내 돈만 쓴 게 아닐까?' 아직 많이 두려워요. 그래도 첫술에 배 부를 수는 없으니,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죠.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먼저 ‘금해민박’ 운영을 잘하고 싶어요. 제가 6주 동안 남해에 살면서 느낀 좋은 것들과, 요즘 청년들이 이렇게 시골 마을에 살면서 많은 걸 얻어갔으면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금해민박이 잘돼야 하거든요. 앞으로는 숙소를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될 것 같아요.
남해에서 기회가 많이 왔던 것들에 대해 저는 어떤 일을 했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작년에 ‘남해FM’을 통해 라디오 방송도 만들고, 금해 민박 오픈도 준비하고 참 바쁘게 살았거든요.
생각보다 제가 전문은 조금씩이라도 할 줄 아는 영역이 많다는 걸, 남해에 와서 새삼 깨닫고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정리해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저를 쓰세요!” 라고 셀프 홍보를 많이 해보려고요.
금해민박 위금실
"인생에 있어 3번의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합니다.
"그 기회는 과연 어떤 식으로 올까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기회
배우자와 평생 행복하게 살게 될 기회
내가 꿈꾸던 일로 잘 살아가게 될 기회
마치 운명처럼 그 기회들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좋은 기회를 맞이하려면 현실에서 변화가 생겨야 한다고 해요.
자신이 노력해서 좋은 기회를 얻는 시기를 놓치면
다음에 얻게될 기회 수준이 낮아진다고 합니다.
세상엔 헛된 경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믿고 다양한 경험과
좋은 현실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우리에게 운명처럼 좋은 기회가
다가오지 않을까요?
오늘 남해로ON 뉴스레터에서는요
방황의 시기에 남해로 6주를 살러 왔다가
운명처럼 다가온 남해가 일터가 되고
더 나아가 반려자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금해민박' 운영자 위금실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Q. 남해에 오시기 전 어떤 일을 하셨어요? ?
안녕하세요, 삼동면 대지포마을에 살고 있는 귀촌 3년 차 위금실이라고 합니다. 남해에 6주살러 왔다가 현재 남해 사람과 결혼해서 평생 살고 있답니다. ?
저의 고향은 경북 상주에요. 고등학교 졸업까지 상주에 살다가 대학을 수도권으로 가게 되면서 쭉 서울에서 살았었죠. 전공은 만화일러스트레이션인데 그림은 졸업 후 거의 안 그렸고, 첫 회사를 동화책으로 어린이 공연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야기꾼의 책공연)에 다녔거든요. 거기서 홍보물 디자인, 배우•악사 대역, 교육, 기획, 행사 진행 등 4년 동안 여러 역을 수행했어요.
어렸을 때, 관심 있는 일은 조금씩 다 해봤던 거 같아요. 워낙 다양한 일을 했다 보니 ‘주로’ 한 일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면 음, 대답하기 좀 어렵네요. ?
Q.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일을 하셨는데, 남해로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2021년도에 남해군에서 진행한 <남해군 촌라이프 실험 프로젝트:6주살러,남해>를 통해서 남해를 처음 와봤어요.
서울에서는 다양한 일을 많이 했는데, 분산된 경험을 가지다 보니 이게 경력이 되어 있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이 잘 안 구해졌어요. 어디에 이력서를 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방황하던 시기에 SNS 광고를 통해 프로그램을 봤고, ‘돈도 안 벌고 있는데 내가 6주살러에 참여해도 될까?’ 하고 많이 고민했어요.
주변에서 남해를 갔다 온 친구들이 ‘남해 좋다’, ‘가서 기분 전환하고 와라’ 말해줘서 과감히 결정했고 6주 동안 살게 되었어요. 마침, 그때 제 인생에서 고민이 참 많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살다 보니 마음도 안정되고 좋았어요.
그렇게 살아본 남해가 좋아 이렇게 계속 살고 있고요. 그리고, 남해에서 우연히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되어 결혼도 하게 되었네요. ?
Q. 현재 남해에서 어떤 일을 주로 하고 계신가요?
남해에서는 ‘윈드씨(WINDSEE)’라는 디자인하는 사업자를 운영하고 있어요. 윈드씨는 <2023 남해 청년으로 살아가기(지역 정착)>라는 지원 사업을 통해서 만들게 됐어요.
남해에 와서 제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결국 디자인 프로그램(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을 다룰 줄 알아서 이쪽을 선택하게 됐어요. 그렇다고 디자이너가 직업은 아니고, 지금껏 살아왔던 것처럼 이 일, 저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살고 있는 대지포 마을에 ‘금해민박’이라는 숙소를 오픈했고요.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는 경쟁이 치열하고 제가 재미있게 했던 활동들이 인정을 못 받아 고민도 많았지만, 남해는 참 귀촌한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 생각이 드네요.
Q. 금해민박 오픈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지금의 고민은 또 어떤 게 있으실지 궁금해요.
‘금해민박’은 대지포 마을에서 꽤 오랫동안 운영되던 민박집이었어요. 저와 남편이 <촌라이프 실험 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한달살러, 남해>를 운영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남해를 제2의 고향처럼 느끼길 바랐던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1년 반 정도 금해민박을 빌려 숙소로 쓰게 됐는데, 올해는 사업이 없어져서 저희가 더 이상 도시 청년들을 남해로 불러오기에 힘든 상황이 되었어요. 금해민박도 당연히 사용할 수 없게 되고요.
그래서 마을의 유일한 청년인 저와 남편이 이 민박을 대신 운영해서 남해와 마을을 계속 알리고, 살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도 청년이 살아가고 있고, 당신들도 와서 살아볼 수 있다고.
꿈에 부풀어서 사장님께 ‘대신 운영해보겠습니다’ 했는데 완전히 거절 당했어요. 돌이켜보면 제 생각과 말이 오만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사장님은 제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시잖아요. 마을에 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제가 이 마을 사람과 결혼은 했지만 계속 살 거라는 믿음도 없으셨을 테니까. 결국 옆에서 지켜보시던 시아버지께서 도움을 주셔서, 금해민박을 임대하여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어요.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초반에는 민박집을 제 취향대로 바꾸는 일이 마냥 재밌었는데, 정화조 교체부터 인테리어를 하면서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좀 우울하고 무섭더라고요.
저는 브랜딩이나 컨설팅 업체를 찾지 않고 로고 디자인부터 인테리어까지 혼자 했는데, 이야기를 만들려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아직 예약이 몇 건 없어요. 작년보다 가격도 올라서 여름마다 이용하던 분들도 안 오시고. '너무 꿈이 컸나? 괜히 내 돈만 쓴 게 아닐까?' 아직 많이 두려워요. 그래도 첫술에 배 부를 수는 없으니,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죠.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먼저 ‘금해민박’ 운영을 잘하고 싶어요. 제가 6주 동안 남해에 살면서 느낀 좋은 것들과, 요즘 청년들이 이렇게 시골 마을에 살면서 많은 걸 얻어갔으면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금해민박이 잘돼야 하거든요. 앞으로는 숙소를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될 것 같아요.
남해에서 기회가 많이 왔던 것들에 대해 저는 어떤 일을 했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작년에 ‘남해FM’을 통해 라디오 방송도 만들고, 금해 민박 오픈도 준비하고 참 바쁘게 살았거든요.
생각보다 제가 전문은 조금씩이라도 할 줄 아는 영역이 많다는 걸, 남해에 와서 새삼 깨닫고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정리해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저를 쓰세요!” 라고 셀프 홍보를 많이 해보려고요.
기획 · 취재 남해로ON
사진 · 자료 남해로ON, 위금실 제공
작성일: 2024-08-23 1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