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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남해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있어요

"함께해서 얻는 큰 힘은 무엇일까요?"

 

가족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건 없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빌 언덕은 가족인 것 같아요.

 

큰 도전을 할 때에도,

새로운 시작을 할 때에도

가족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죠.

 

"여정을 통해 함께 성장해요" 

 

그 새로운 도전을

함께 시작한다면

그 여정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 남해로ON 뉴스레터에서는요 

 

‘흔한남해’를 운영하는 아오키 료타와 김미선 부부의

다양한 경험과 도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경험들이 합쳐져 남해에서

새로운 삶을 구축하는 과정을

들려드릴게요.

 

 

 

Q. 대표님 소개 한 번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흔한남해'를 운영하는 부부입니다. 저는 귀촌한 지 3-4년 된 일본 사람으로, 경기도 일산에서 온 아오키 료타라고 합니다.

 

저는 경기도 일산 토박이예요. 한 번도 일상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찐토박이죠. 남해를 해남으로 알 정도로 무지했지만, 이제 귀촌 4년차가 된 김미선입니다. 저희 부부가 함께 '흔한남해'를 운영하고 있어요.

 

 

 

Q.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일본어 강사를 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일본어 학원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일본어를 가르쳤죠. 그동안 여러 직업을 거쳤어요. 동일본대지진, 코로나 등 다양한 이슈로 우리 일도 계속 바뀌었어요. 그러다 2015년쯤 일본 본사와 연결돼서 한국 지사를 맡게 됐어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무역업을 했는데, 주로 콘솔 기계 부품 관련이었죠. 코로나 시기에 일본 쪽에서 지사를 닫고 일본으로 오라고 했어요. 하지만 아이들도 있고 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남해로 오게 됐습니다. 

 

남편은 일본어 학원에서 선생님이었고, 저는 제자였어요. 당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영어는 기초부터 배우기가 좀 부끄러웠지만, 일본어는 처음부터 배울 수 있어서 도전했어요. 그렇게 배우러 갔는데, 남편이 원어민 선생님이셨던 거예요. 그렇게 만나게 되었죠. 저는 모토로라라는 반도체 회사에서 17년 동안 일했어요. 사원부터 시작해서 관리자까지 올랐죠.

 

그 와중에 아이를 낳고 키우던 시기가 있었는데, 큰 아이가 4살 때쯤 자폐 경계선에 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서 직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가족이 함께 발전할 방법을 찾다가 남해까지 오게 됐죠. 3교대로 일하면서 친정 엄마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남편도 무역업을 하면서 집에 있을 때는 아이들을 전적으로 돌봐줬어요. 우리 셋의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Q. 남해로 내려오기까지의 결심이 궁금해요

4살 무렵 자폐 영유아 검진에서 자폐 성향이 나타났다고 해요. 남편이 주 양육자였는데, 이중 언어 교육 때문에 일본어로 대화를 많이 해서 아이의 한국어 발달이 느렸던 게 영향을 미쳤나 봐요. 처음엔 충격이었죠. 자폐를 가진 부모 누구나 그렇듯 우리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 경험으로 우리는 더 단단해졌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일반적인 교육에 대한 마음이 크지 않아서 처음엔 보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남편의 의견으로 학교에 보냈는데, 예상대로 어려움이 있었죠. 결국 1학년 입학 15일 만에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시작했어요. 홈스쿨링이라고 해도 그냥 아이에게 더 자유로운 환경을 주고 싶었어요. 아이의 속도에 맞춰가자는 생각이었죠. 우리 아이는 특별했어요. 지하철 노선을 외우면서 한글을 배웠거든요. 하지만 9살쯤 되니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어 했어요.

 

그때 우연히 상주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알게 됐어요. 상상 놀이터 선생님의 블로그를 보니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였어요.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았죠. 저는 원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인데, 갑자기 남해로 간다고 하니 남편은 처음에 장난인 줄 알았대요. 하지만 제가 진지하게 얘기하니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산에서 7시간이나 걸리는 남해 상주로 오게 된 거예요. 처음엔 무서웠지만, 아이를 위해 결심했죠.

 

 

 

오는 길에 "이런 길에 사람이 살아?"라고 생각했죠. 예전에 시골에 살았던 기억이 있는데도 제가 살던 곳에서 즉, 도시에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 없는 저로서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도 엄마니까, 내가 안 하면 이 아이는 앞으로 나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죠.

 

남편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회사에서 계속 높은 연봉을 제시했지만, 우리에겐 타이밍이 중요했어요. 파주에 혁신학교가 있어서 거기로 갈까 고민도 했는데, 결국 자연 속에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남해로 왔죠. 우리 아이는 지금 6학년인데, 5학년 때 진주의 도교육청 연계 정신과 병원에서 자폐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환경을 바꾸니 아이도 변했어요. 자폐 여부와 상관없이 이 환경이 아이에게 너무 잘 맞았던 거죠. 지역 분들의 텃세도 없고 오히려 잘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일산에서 38년 살았는데, 이렇게 남해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Q. 남해에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남편이 40대가 넘어 갑자기 요식업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워낙에 요리를 좋아했거든요. 처음엔 반대했죠. 무모한 도전 같았거든요. 하지만 남편이 너무 확고해서 결국 동의했어요.

 

남편은 식당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엔 싫었지만, 남편이 너무 즐거워하는 걸 보니 마음이 바뀌었죠.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부모도 6학년 정도까지 성장한다는 말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우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씩 도전하면서 깨우쳐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거예요.

 

지금은 큰 아이 덕분에 남해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일산에서 맴돌던 제가 아무 연고 없는 곳에 와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게 너무 좋아요. 돈은 고정적이진 않지만, 많은 걸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있어요. 아이들도 또래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과도 어울리며 자라고 있죠.


여동생도 저희를 보고 상주로 이사 왔어요. 조카가 사춘기를 겪으며 힘들어하다가 상주에 살고 싶다고 해서 온 거죠. 여동생의 남편도 좋은 직장을 버리고 왔어요.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우리 가족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어요. 많은 것을 버린 것 같지만, 사실은 더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계속 고민이에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생업도 중요하지만, 저희가 내려온 목적이 있잖아요. 아이들과 좋은 환경, 각자의 만족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그런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영업 시간을 늘리거나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정말 SNS로 광고하는 시대다 보니, 그게 재밌어서 저희가 인스타나 그런 걸로 더 즐겁게 살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요. 요리도 요리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저도 하나의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기 때문에 저희가 늘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라요.

작성일: 2024-12-09 12:33:56